[중앙시평] ‘나의 시대’의 도래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1992년 교수가 되어 32년 동안 사회학을 가르쳐 왔다. 그동안 반복해 만난 사회학 담론이 청년세대론이다. 1990년대에는 신세대론과 2000년대에는 88만원세대론과 마주했다. 2010년대에는 밀레니얼세대론과 2020년대에는 MZ세대론과 조우했다.

세대론은 양가 감정을 갖게 한다. 같은 세대라도 그 안에는 이념·계급·젠더에 따른 차이가 존재한다. 이념·계급·젠더가 세대보다 더 큰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럼에도 세대갈등과 세대정치에서 보듯 세대가 사회변화를 이끄는 동인의 하나임은 부정하기 어렵다. 게다가 세대문화와 세대 차이에서 보듯 세대는 시민적 관심이 높은 주제다. 세대 담론이 힘이 센 까닭이다.

공동체에서 개인에로의 대전환
지구적 청년세대의 주된 특징
‘나의 시대’라는 새로운 시대
정책과 정치에 적극 반영돼야

1990년대 이후 청년세대론들에는 세 가지 특징이 눈에 띈다. 첫째,중앙시평나의시대의도래주포 새로운 세대론의 배경에는 사회적 격변이 놓여 있다. 신세대의 부상에는 민주화 시대의 개막이, 88만원세대의 등장에는 외환위기의 발생이, 밀레니얼세대와 MZ세대의 출현에는 모바일사회의 진전이 자리 잡고 있다. 세대론은 빈번히 마케팅 전략과 정치적 동원에 이용된다. 그러나 중대한 사회변동의 산물이라는 사실 또한 눈여겨봐야 한다.

둘째, 정치적 측면과 사회문화적 측면의 차이를 관찰할 수 있다. 정치적 경향에서 신세대는 586세대와 가까운 반면, 88만원세대·밀레니얼세대·MZ세대에겐 정치적 무관심이 증가해 왔다. 사회문화적 성향은 사뭇 다르다. 산업화세대와 민주화세대를 공동체주의로 묶을 수 있다면, 신세대부터 MZ세대까지는 개인주의가 두드러진다. 세대론의 진화에는 공동체에서 개인에로의 대전환이라는 시대의 도도한 흐름이 담겨 있다.

셋째, MZ세대는 실체가 다소 모호하다. 경험의 측면에서 세대는 코호트의 의미를 가진다. 코호트란 동일한 시간을 살아가며 특정한 사건을 겪어 유사한 행동양식을 공유하는 집단을 지칭한다. 밀레니얼세대와 Z세대를 묶은 MZ세대는 코호트의 관점에서 범위가 너무 넓다. 40대에 들어선 이들과 20대에 진입한 이들의 경험 및 의식은 적잖이 다르다.

청년세대에 대한 관심을 우리나라에만 국한할 필요는 없다. 미국에서는 밀레니얼세대(1980년대 초반과 1990년대 중반 사이 출생 세대)와 Z세대(1990년대 중반과 2010년대 초반 사이 출생 세대), 일본에서는 사토리세대(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후반 사이 출생 세대), 중국에서는 바링허우세대(1980년대 출생 세대), 주링허우세대(1990년대 출생 세대), 링링허우세대(2000년대 출생 세대)가 관심을 끌어 왔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 세대론과 중국 세대론이다. 사토리세대는 안정된 직장은 물론 현실적 출세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물질적 욕망에 달관한 세대다. 사토리란 달관을 뜻한다. 바링허우·주링허우·링링허우는 중국식 디지털 네이티브다. 이들의 경우 서구처럼 개인주의가 성장해 왔지만, 중국 경제의 부상과 함께 자민족중심주의 또한 강화해 왔다. 이처럼 청년세대를 이해하기 위해선 지구적 일반성과 국가적 특수성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내가 주목하려는 것은 지구적 청년세대론들을 관통하는 ‘미이즘(Meism)’이다. 미이즘이란 내가 세계의 중심에 있다는 ‘나에 의한, 나를 위한, 나의’ 이념이자 철학이다. 세계가 나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인식론적 천동설’이다. 과학기술혁명의 진전으로 사회변동의 속도가 빨라지는 와중에 개인의 인지적 주권이 강화되는 ‘나의 시대’를 지구적 청년세대들은 살아가고 있다.

나의 시대는 명암이 뚜렷한 시대다. 나의 시대는 ‘자기계발 시대’다. 내 일과 여가, 욕망과 취향, 자존감과 임파워먼트가 가장 중요하다. 오늘날 나를 통과하지 않는 그 어떤 개혁이나 혁명 모두 무의미하다는 주장은 나의 시대의 시대정신을 선명히 드러낸다. 워라밸, 소확행, 절차적 공정성을 중시하고, 생애의 경로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구성해가려는 것이 나의 시대의 실존적 초상화다.

동시에 나의 시대는 ‘나 홀로 시대’다. 온라인에서 관계가 넘쳐나지만 오프라인에서는 혼밥·혼술·혼영 등 혼자만의 생활에 익숙하다. ‘우리는 각자 존재하고 나는 홀로 소멸한다’는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말은 나의 시대의 그늘을 날카롭게 묘사한다. 인공지능·플랫폼·블록체인이 주도하는 디지털 대전환 속에서 정작 나의 삶이 불확실하고 불안하며 분노를 자주 느끼는 것이 나의 시대의 내면적 풍경이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제 MZ세대가 사회의 주축으로 부상하면서 우리나라는 산업화시대와 민주화시대를 넘어 ‘나의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내가 전달하려는 바는 저출생 대책을 포함한 정책이든 내년 총선을 앞둔 정치든 설득력을 갖추기 위해 나의 시대의 도래에 대한 숙고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이다. 반평생 청년세대를 가까이 지켜본 사회학자의 생각을 적어두는 까닭이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