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얼마 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를 봤다. 서울시오페라단이 올린 오페라에서 파미나 역을 부른 소프라노 황수미는 빛나는 가창을 선보였다. 파파게노를 부른 바리톤 김기훈과 타미노 역의 테너 김건우도 호연이었다.
모차르트 최후의 오페라답게 원숙한 음악만으로도 귀를 사로잡는 ‘마술피리’는 제목 때문인지 어린이 오페라나 가족 오페라로 많이 홍보되곤 한다. 사실 ‘마술피리’가 다루는 세계는 아이들이 이해하기에는 다소 깊고 어둡다. 볼 때마다 쉬카네더가 쓴 작품의 줄거리가 생각의 여지를 남긴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는 사랑의 힘으로 악의 세상을 이겨낸다. [사진 서울시오페라단]
왕자 타미노를 만난 밤의 여왕은 폭군 자라스트로에게 납치된 자신의 딸 파미나 공주를 구해달라고 청한다. 여기까지는 예측 가능한 이야기다. 밤의 여왕이 건네주는 마술 피리를 가지고 새 사냥꾼 파파게노와 함께 타미노가 적지에 잠입해 보니 웬걸,류태형의음악회가는길마술피리의반전선물시장 위안 사정은 정반대였다. 현자 자라스트로가 악과 어둠의 세계를 지배하는 밤의 여왕으로부터 파미나를 보호하고 있었다.
악이라 여기고 경계했던 대상이 사실은 선이라는 180도 반전은 좀 느닷없기도 하다. 이를 두고 쉬카네더가 대본작가로서 전문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었다. 이제 그에 대한 평가는 다시 한번 바뀌었다. 쉬카네더의 그 대본 때문에 모차르트의 음악을 통해 한층 더 깊이 있는 오페라를 만들어냈다고 평가된다. 욕망을 지닌 타자가 서로 맞설 때 선과 악을 판단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서로의 입장이 있을 뿐이다. 선과 악, 자신과 타자의 반전을 통해 우리는 절대선과 절대악이 아닌 복잡다단한 세상의 가치를 만나게 된다.
‘마술피리’를 보며 문학평론가 신형철 서울대 교수가 쓴 『정확한 사랑의 실험』 중 ‘진정으로 윤리적인 태도’를 기술한 표현이 떠올랐다. “선의 기반이 사실상 매우 허약하다는 것을 냉정하게 직시하고 악의 본질이 보기보다는 복합적이라는 사실을 겸허하게 수용하면서, ‘선의 악’과 ‘악의 선’을 섬세하게 읽어내는 태도”라는 그의 글은 다면체처럼 반짝인다.
악의 무리를 쓸어버리고 선한 사람들끼리 알콩달콩 살 수 있다면 참 편할 것만 같다. 하지만 세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오늘도 이 세상은 본질을 들여다보기 쉽지 않은 골치 아픈 문제들로 가득하다. 내가 알고 있던 사실이 결국에는 틀릴 수 있고, 철석같이 믿었던 최후의 보루도 무너지곤 한다.
다시 오페라로 이야기를 돌리자. 타미노와 파미나 두 젊은이는 수많은 시험과 엄혹한 시련을 견디고 마침내 사랑의 승리를 얻는다. 어릿광대 같은 새잡이 파파게노도 천생연분 파파게나를 아내로 얻는다. 프랑스 소설가 로맹 롤랑은 ‘마술피리’를 두고 “이 오페라는 온통 빛”이라고 말했다. 오늘 여기의 현실에서도 세상을 밝히는 건 오래 참고 배려하는 사랑의 힘이다.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